층간소음 분노조절잘해된 썰 (8편)
8편. 가장 잔인한 농담
쉬는 날을 맞을 때면 병운은 스스럼없이 2층 내 집 문을 두드렸다. 그는 편안한 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내려와 내 소파 한구석을 떡하니 차지했고, 우리는 배달앱으로 족발이나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며 시답잖은 잡담을 나눴다.
하루는 병운이 자신의 오랜 불알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며 집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으로 나를 불렀다. 기름때 낀 환풍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고, 튀김 음식 냄새에 섞인 맥주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 술집이었다.
"형님, 동생들이 인사드리겠수. 이쪽은 재중이, 요놈은 민철이. 제 오랜 친구들입니다."
재중이라는 녀석은 앞치마를 두르고 뻥튀기 그릇을 내어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일찌감치 결혼해 이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정작 가게 일은 아내나 알바생들이 도맡아 하고 본인은 낮에 애들 등하원을 전담하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이른바 '마을 돌돌이' 같은 녀석이었다.
"아유, 2층 그 형님이시구나. 우리 병운이랑 형님 아우 하기로 하셨다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자식 덩치만 컸지 바보 같아서 챙길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능글맞은 녀석의 성격 덕에 합석은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민철이라는 녀석은 꽤 과묵하게 소주잔만 비워냈다. 눈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그는 인근 공단에서 꽤 그럴싸한 직책을 달고 있다지만, 복잡한 집안 문제에 얽혀 월급을 고스란히 털어 넣는 바람에 투잡으로 쿠팡 물류센터까지 뛰는 짠내 나는 사내였다. 병운에게 그 센터 일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민철이었다.
"그.. 정민후 형님이라셨죠? 덕분에 이 녀석이 좀 사람같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제가 다 맘이 놓이네요. 저 대신 이 녀석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휴, 내가 이 녀석 애인도 아니고, 별 말씀을. 그냥 이웃끼리 좋은 게 좋은 거죠."
병운은 그저 자기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 시켜준 게 좋은지 시종일관 너털 웃을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렇다. 병운이 12345678이라는 기적의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제 방을 내어주던 그 '소음의 주범들'이 바로 이 녀석들이었다. 시끌벅적한 호프집 구석 자리, 서로 쌍욕을 섞어가며 옛날이야기를 안주 삼아 떠드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가만히 맥주를 들이켰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내 하나는 투명하고 의리 있는 놈들. 나는 술기운에 얼굴이 발그레해져 크게 웃는 병운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그의 세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을 느꼈다.
일상을 보내는 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 그렇게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여름의 눅진한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7월의 어느 날.
기적처럼 우리 두 사람 모두 온전하게 쉬는 날이 겹친 평일 낮이었다. 병운이 뜬금없이 목욕탕을 제안했다.
"형님, 날도 슬슬 더워지는데 간만에 때나 한 번 싹 밀러 가시죠. 제가 등 시원하게 밀어드릴게."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무리 이성을 다잡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들, 그 거대한 육체를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상태로 마주해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험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꽁무니를 빼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나는 태연한 척 목욕 바구니를 챙겨 들었다.
동네의 낡은 대중목욕탕. 특유의 습하고 퀴퀴한 비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덜컹거리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탈의실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는 병운의 넓은 등판을 보며, 나는 애써 시선을 락커룸 바닥에 고정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탕 안으로 들어서기 전, 그가 나를 돌아보며 "형님, 먼저 들어가시죠." 했을 때, 나는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그의 완전한 나신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순간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의 하반신은 얄팍한 야동에서나 볼 법한,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대물을 달고 있는 괴물까진 아니었다. 유도로 다져진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 살이 덮여있어 그 근사한 가치를 몰라서 그렇지 숨을 쉴 때마다 깊게 갈라지는 두툼한 흉통, 그리고 수많은 상처가 남은 굵고 단단한 허벅지. 그 압도적이고 묵직한 거구의 피지컬에 아주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내답고 훌륭한 형태의 성기를 가졌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 과장 없는 현실적인 균형감이 병운이라는 남자의 건강한 짐승 같은 매력을 더욱 숨 막히게 돋보이게 했다. 나는 그 우람하고 묵직한 육체의 밸런스에 속으로 조용히 감탄하며, 시선을 거두고 뜨거운 온탕 안으로 몸을 담갔다.
"어으... 시원하다. 물 온도 딱 좋네요. 형님도 빨리 들어오십서."

온탕 한구석에 자리 잡은 병운이 벌겋게 익어가는 얼굴로 웃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 안에서 그를 마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이 남자는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도망치게 만드는 위험한 야수가 아니었다. 벌거벗고 등을 맞댄 채 때를 밀어줄 수 있는, 완벽하게 편안하고 온전한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온탕에서 적당히 몸을 녹인 우리는 후끈한 열기가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건식 사우나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좁은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벽에 걸린 모래시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병운의 탄탄한 어깨와 가슴골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병운아."
"예, 형님."
"너는 여름에 휴가 같은 거 없어? 쿠팡도 사람 일하는 곳인데 여름휴가 며칠은 주지 않나."
내 물음에 병운이 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피식 웃었다.
"휴가라는 걸 제대로 누려본 적이 언젠지도 모르겠수다. 비행기 타고 어디 놀러 가본 적도 없고, 노가다 뛸 때는 비 오는 날이 그냥 쉬는 날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쿠팡은 7월 말쯤에 며칠 연달아 뺄 수 있게 스케줄 조정은 해주더라고요."
"그래? 그럼 그때 나랑 어디 좀 갈래?"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아내던 병운의 손이 우뚝 멈췄다.
"형님이랑... 여행을요?"
"어. 나도 학원 방학 특강 들어가기 전에 딱 그맘때쯤 며칠 쉬거든. 매번 휴가철 돼도 같이 갈 사람도 없고 혼자 가긴 처량해서 그냥 에어컨 틀어놓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올해는 좀 가고 싶네."
"아유, 형님 같이 번듯한 분이 왜 같이 갈 사람이 없슴까. 그래도 저야 형님이랑 가면 영광이죠. 어디 계곡 같은 데 가서 백숙이라도 뜯으실랍니까?"
병운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사우나의 뜨거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무심한 척 툭 내뱉었다.
"계곡 말고, 제주도 어때. 네 고향이잖아."
순간 땀방울이 맺힌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덩치 큰 사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건조하게 흘러내렸다.
"...제주도는 왜요."
한참 만에 흘러나온 병운의 목소리는 바싹 메말라 있었다. 나는 이런 병운의 반응에 조금 위축됐지만 이유를 모르니까 그냥 차분히 말해보았다.
"왜긴? 여름휴가 하면 당연히 바다 낀 제주도지. 내가 이십 대 초반에 대학 동기들이랑 배낭 메고 가 본 뒤로 한 번도 못 가봤거든." "아... 네..." "왜, 고향 가는 게 부담스러워? 부모님 찾아뵙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병운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제가 이십 대 초반일 때 일찍 돌아가셔서... 거기 가봤자 반겨줄 고향 집 같은 것도 없수다." "아... 미안. 내가 몰랐네." "아닙니다. 그냥... 제주도에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래요."
병운의 시선은 벤치 바닥의 나무 틈새를 향해 무겁게 떨어져 있었다. '안 좋은 기억'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깃든 지독한 통증과 회한. 그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부모님을 잃은 고향에 대한 쓸쓸함 정도로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무릎 위로 올린 그의 커다란 손등을 툭 쳤다.
"에이 안 좋은 기억만 있으면 어떡하냐? 이제 좋은 기억으로 덮어야지.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면 그런 기억도 걷어질 거야. 나도 제주도 토박이가 숨겨진 맛집이나 좋은 경치 좀 가이드해 줬으면 좋겠는데? 정 싫으면 딴 데로 알아보고."
일부러 아쉬운 기색을 뚝뚝 흘리며 한발 물러서자, 바닥만 보던 병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병운에게 지금의 제주도는 어떤 트라우마를 간직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병운의 어두운 부분들은 내가 차츰 밝히고 깨트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때 나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혹은 나와의 첫 여행을 이대로 무산시키고 싶지 않다는 조바심이 그의 눈동자에 스쳤다.

"...아닙니다."
"어?"
"형님이... 가고 싶으시면, 가야죠."
병운이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십 대 때 가보시고 한 번도 못 가보셨으면 뭐 거의 처음이나 다름 없지요. 제가 아주 기가 막힌 데로 모실 테니까, 저만 믿으십서."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는 이내 내 옆으로 훌쩍 다가앉으며 "대신 비행기 표는 제가 끊게 해주십서." 하고 호기롭게 덧붙였다.
나는 사우나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상처를 삼켜내는 이 미련한 사내 때문인지 모를 묘한 열기에 휩싸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까짓거 그 아픔도 내가 덮어주고 아물게 해주리라.
우리의 첫 여행지는 그렇게, 병운의 상처가 묻혀있는 제주도로 정해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상처가 그토록 깊고 검은 상처일지...
탈의실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욕탕 입구 냉장고로 향했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 차가운 바나나 우유 두 병을 꺼내 든 병운이, 익숙하게 빨대를 꽂아 내 입에 먼저 물려주었다.
"어으... 형님, 목욕 끝나고 마시는 바나나우유가 진짜 천국이지 않슴까? 완전 시원하네!"
"그러게. 네 덕분에 묵은 때 다 벗기고 호강한다."
우리는 단지 몇십 분 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서로의 몸을 마주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은 것처럼(물론 나만 빼고), 나란히 걸으며 바나나 우유를 들이켰다. 오후 3시의 햇살은 아직 따가웠지만, 갓 씻고 나온 몸을 스치는 바람은 기분 좋게 서늘했다.
우리 집 거실로 돌아오자, 베란다 창으로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우리를 반겼다. 목욕 후의 나른함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까지. 완벽하게 평화로운 소소한 일상이었다. 병운은 제 집인 양 스스럼없이 소파 아래 러그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항공사 앱을 만지작거렸다.
"형님, 비행기 표 확인 한 번 더 해주십서. 7월 28일 아침 9시 발, 맞죠?"
"어. 맞게 잘했어. 걱정도 팔자다, 곰탱아."
나는 소파에 걸터앉아 바나나 우유 빈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병운의 짧은 머리통을 툭 쳤다. 목욕하고 나와서 그런지 그의 몸에서는 옅은 비누 향과 바나나 우유 향이 섞여 묘하게 달큰한 냄새가 났다. 하얀색 면 티셔츠 위로 비치는 그의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흉통의 라인이, 목욕탕에서 봤던 그 적나라한 병운의 나체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냈다.
나는 애써 침을 삼키며 시선을 TV 화면으로 돌리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앉아있던 병운이 씩 웃으며 내 다리 사이 공간으로 제 몸을 쑥 들이밀었다.
"형님, 아까 사우나에서 가이드 해달라고 하셨죠?"
"어? 어, 그랬지."
"제주도 토박이가 얼마나 화끈하게 모시는지, 미리 맛보기 한번 보여드릴까요?"
병운이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의 눈동자 속에서 묘한 장난기를 읽었다. 그건 단순히 형을 잘 따르는 동생의 눈빛이 아니었다. '우리 이제 이 정도로 친하잖아!'라며 스스럼없이 선을 넘나드는 수컷의 무구한 도발이었다.
"화, 화끈하긴 뭐가... 끄윽!"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운이 제 두툼한 팔을 내 허벅지 안쪽으로 쑥 집어넣으며 내 몸을 소파 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유도로 다져진 무식한 힘에 나는 속절없이 소파 등받이 쪽으로 나동그라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이 곰탱아!"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병운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 다리를 제 어깨에 얹으려는 듯 들어 올리며, 제 얼굴을 내 사타구니 근처로 들이밀었다. 얇은 면 바지 위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형님, 제주도 곰은 이렇게 기선 제압부터 하고 시작합니다!"
병운이 헤헤 웃으며 내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제 굵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장난을 쳤다. 그것은 그저 동생이 형에게 부리는 짓궂은 장난일 뿐이었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그의 그 우람하고 남자다운 성기를 확인하고 난 내 입장에선, 이 장난이 지독하게 야하고 에로틱하게 다가왔다. 그의 머리카락이 내 아랫배를 스칠 때마다, 그의 두툼한 손길이 허벅지 안쪽을 건드릴 때마다 전신에 소름이 돋고 아랫배가 뻐근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당황과 수치심,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욕망에 휩싸여 버둥거렸다.
"아, 안 돼! 하지 마! 곰탱아, 저리 가!"
내가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며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병운은 오히려 그 반작용을 이용해 내 몸을 제 가슴팍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순간, 중심을 잃은 내 몸이 허공에 붕 떴다가, 바닥에 앉아있던 병운의 두툼한 가슴팍 위로 툭 무너져 내렸다.
털썩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병운의 넓은 흉통에 얼굴을 처박은 채, 그의 튼튼한 두 팔 안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하얀색 티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단단하고 묵직한 가슴 근육의 촉감. 목욕탕에서 봤던 그 근사한 육체가 지금 내 온몸을 집어삼킬 듯 밀착되어 있었다.

"......!"
거실에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내 코끝으로 그의 짙은 체취와 비누 향이 섞여 훅 끼쳐왔다. 내 얼굴이 처박힌 그의 왼쪽 가슴에서, '쿵, 쿵, 쿵, 쿵' 하고 짐승의 것처럼 터질 듯이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것이 내 심장 소리인지, 아니면 나를 안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나를 꽉 끌어안고 있던 병운의 팔에도 움찔,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역시 이 묘한 밀착과 갑작스러운 고요함에 당황한 듯했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 아래, 두 남자의 뜨거운 숨소리만이 적막을 찢고 있었다.
내 코끝이 병운의 단단한 가슴팍에 파묻혔다. 하얀 티셔츠 너머로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 박동이 내 뺨을 때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 미안. 놔봐. 이 곰탱아."
하지만 병운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두꺼운 팔에 힘을 주어 내 허리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았다. 거대한 바위가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압도적인 무게감. 나는 숨을 멈춘 채 그의 품에 갇혀버렸다.
"형님."
그의 가슴통을 울린 낮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까의 장난기 어린 투가 아니었다. 조금은 가라앉은, 그래서 더 위태롭게 들리는 목소리.
"형님 덕분에 요즘 내가 얼마나 살 맛이 나는지 아십니까?"
"......무슨 소리야, 징그럽게. 이거 좀 놓고 말해."
나는 짐짓 소름 돋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가슴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내 손바닥에 닿는 그의 근육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병운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깊은 한숨 같은 숨결을 내뱉었다.
"진짜임다 형님. 맨날 어두컴컴한 센터에서 박스나 나르고, 빚쟁이들한테 쫓기면서 내 인생은 원래 이런 건 줄 알았는데... 형님 만나고 나서는 아침에 계단 올라오는 게 즐겁단 말입니다."
병운의 팔에 더 꽉 힘이 들어갔다. 그가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게,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전해지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투박한 경계심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그는 내 앞에서 제 가장 연약한 속살을 다 드러낸 채 앵겨오고 있었다.
"형님."
"어, 말해."
"사랑함돠~"
격없이 친구들에게나 던질 법한, 무뚝뚝하고 투박한 애정 표현. 하지만 그 말이 내 고막을 타고 뇌리에 박히는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녀석에게 그 말은 '의리 있는 형님'을 향한 가벼운 인사치레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을 나라는 사람을 숨기고 억눌러온 나에게, 사랑한다는 그 네 글자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허락받은 기분. 장난처럼 던져진 그 말에 내 심장은 다시금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개소리 말고 한숨 자, 이 멍청아."
나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를 밀어냈다. 병운은 제 고백이 나를 얼마나 무너뜨렸는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헤헤 웃으며 다시 러그 위에 대자로 뻗었다.
"에이, 진심인데. 제주도 가면 제가 더 사랑해드릴게. 기대하십서!"
병운은 금세 노곤해진 듯 눈을 감았지만, 나는 그 뒤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실을 채운 오후의 햇살이 지독하게 뜨거웠다.
그렇게 우리의 7월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가고 있었지만,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갑자기 더디 흘러가고 있었다.
서비스샷~!

"형님, 우리 서로 등이나 밀어줍시다. 내가 먼저 밀어드리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