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분노조절잘해된 썰 (마지막 편)
마지막 편. 평행선
"그래서... 새로 알아본 곳은 있고?"
내 물음에 병운은 젓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게, 마땅한 데가 없수다. 요즘 이 동네에 대규모 상가 단지도 들어오고 자잘하게 호재가 겹쳐서 그런지, 딱히 예전보다 좋은 집들도 아닌데 전체적으로 보증금이랑 월세가 엄청 올랐더라고요."
병운의 짙은 눈썹이 팔 자로 푹 꺾였다.
"형님한테 빌린 돈도 빨리 갚아야 하고, 최대한 돈을 아끼려다 보니까 보증금 싼 곳만 찾게 되는데... 정 안 되면 아직 정직원은 아니지만, 쿠팡 임직원 숙소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같은 팀 반장님한테 한 번 여쭤보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물론 병운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돈을 모아 내게 진 빚을 갚으려는 그 책임감과 현실적인 판단이 당연했다.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기 몸이 부서지더라도 어떻게든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층간소음으로 얼굴 붉히던 타인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온기를 나누게 된 연인인데, 나에게 기대는 더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먼 숙소로 떠날 생각부터 한다는 게 내심 서운하게 다가왔다. 나랑 멀어지는 건 아쉽지도 않은 걸까.
물론, 이 사태를 해결할 가장 간단하고 상식적인 방법이 있긴 했다. 내가 당장 집주인 영감님에게 전화를 걸어, 위층 세입자가 이제는 쿵쾅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잘 지내니 그냥 계속 살게 두시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면 그만이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도배장판을 새로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으니, 영감님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일 터였다.
하지만, 평생을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며 살아온 내 이성이 그보다 훨씬 더 완벽하고 매력적인 해법을 순식간에 계산해 냈다.
어차피 지금 내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내 주방에서 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데. 굳이 다시 저 위층으로 올려보내서 따로 살 이유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 눈앞에서 멀어지게 둘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나는 식탁 위에 턱을 괴고, 내 눈치를 보며 찌개를 뒤적이는 녀석의 다정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아주 담백하면서도 과감하게, 녀석이 상상도 못 했을 카드를 툭 던졌다.
"같이 살자. 그럼 되잖아.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아."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달그락! 소리와 함께 병운의 손에 들려 있던 숟가락이 식탁 위로 툭 떨어졌다.
"……예?"
녀석은 방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뇌에서 처리가 덜 된 사람처럼 두 눈만 끔벅거렸다. 녀석의 넓은 얼굴이 서서히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오르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가, 같이... 살아요? 제가, 형님이랑?"
"왜. 그건 좀 불편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 제가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형님 댁에 얹혀삽니까. 가뜩이나 빚도 다 못 갚았는데..."
녀석은 커다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역시나, 이 미련할 정도로 반듯한 사내는 내 제안을 '불쌍한 세입자 구제'쯤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누가 얹혀살래? 나도 이 넓은 집 혼자 살기 넓어서 적적하던 참이었어. 게다가 너 지금 밥 차려놓은 거 보니까, 앞으로 아침저녁으로 이 집 주방 네가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 월세 대신 가사 노동이랑... 뭐, 밤일(?)로 퉁치면 충분히 수지타산 맞지 않나?"
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짐짓 농담처럼 툭 던지자, 병운의 귀끝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녀석은 더 이상 당황해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짙고 무거운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방금 그 말씀... 진짜 진심이십니까?"
"내가 이런 걸로 농담할 사람처럼 보여? 동거하자는 거야, 내 애인이랑. 내가... 너 멀리 보내기 싫어서."
내 솔직한 한마디에, 병운의 커다란 체구가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녀석의 굵은 목울대가 출렁이며 힘겹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병운은 의자를 거칠게 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식탁을 빙 돌아, 내 의자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녀석은 내 의자 양쪽 팔걸이를 두 손으로 꽉 틀어쥐고 상체를 숙여 내 눈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녀석의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완벽하게 집어삼켰고,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녀석의 묵직한 체향이 훅 끼쳐왔다.
"형님... 저 진짜, 가진 것도 없고 무식하게 이 큰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놈입니다."
병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음정은 더 낮게, 바닥을 긁듯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활비는 형님이 달라는대로 다 드릴 수 있지만 밥도 무식하게 많이 먹어서 식비도 엄청 나갈 거고, 머리도 나쁘고 눈치도 없어서 살다 보면 형님 속 뒤집어놓을 일도 많을 겁니다. 배운 형님에 비하면, 저는 진짜 턱없이 부족하고 흠투성이인 놈인데..."
"병운아.. 나는 너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인품 자체가 나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 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졌어."
진심이었다. 내가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잃었던 걸, 이 녀석은 더 치열하게 살면서 칼에 베인 것보다 아린 상처까지 품으면서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형님이 저 한 번 거둬주시면, 평생 형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떠받들고 살겠수다. 밤에 나가서 뼈가 부서져라 일해서 빚도 다 갚고 호강시켜 드릴 테니까..."
녀석은 내 시선을 피하지도 못한 채, 커다란 손으로 내 무릎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부서질 듯 꽉 쥐었다.
"나중에 같이 살다가 제 미련한 짓에 질리더라도, 밉다고 내치지만 말아주십서. 저 진짜 이제... 형님 없으면 안 됩니다."
내게 쏟아내는 녀석의 고백은 무서울 정도로 간절하고 맹목적이었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어 살았던 남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밑바닥을 내보이며 온전한 구원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 투박하고도 절절한 진심에 가슴 깊은 곳이 먹먹하게 저려왔다.
나는 녀석의 뺨을 감싸 쥐고, 그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 내 쪽으로 지그시 끌어당겼다.
"누가 쫓아낸대. 바보야. 평생 내 전용 매트리스 겸 요리사로 부려 먹을 건데."
내 다정한 대답에 녀석의 굳어있던 턱근육이 스르르 풀리며, 마침내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병운은 참지 못하고 내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려 제 넓은 품 안으로 꽉 끌어안았다.
"진짜... 평생 모시고 살겠수다. 내 형님."
녀석의 단단한 가슴팍에 내 뺨이 온전히 맞닿았다. 나를 감싸 안은 녀석의 거대한 두 팔은 그 어떤 요새보다 견고했다. 당장 이삿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당분간의 엇갈리는 밤낮 생활은 어떻게 맞춰야 할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더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식사를 배불리 마치고 난 병운이에게 선물로 줄 셔츠를 앙증맞게 입혀주었다. 평소 병운이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타일이었지만, 병운이는 입을 크게 벌리며 마음에 든다고 웃어 주었다. 함께 차를 타고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드라이브를 나섰다. 조용하게 미끄러져 나가는 차의 조수석에는 녀석의 커다란 체구가 꽉 차게 들어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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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이어진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짧은 수면 시간 탓에 녀석의 낯빛은 제법 피로해 보였다. 하지만 병운은 나와 함께 온전히 깨어있는 이 주말의 오후를 1분 1초라도 허투루 보내기 싫은 눈치였다. 녀석은 어떻게든 졸음을 쫓아내려 애쓰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간판 하나, 길가에 핀 꽃, 심지어 바닥을 쪼고 있는 비둘기나 날파리 하나까지 가리키며 나와의 이야깃거리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형님, 방금 저기 미용실 안에 있는 강아지 보셨수까? 다리 엄청 짧은 거. 그... 워키토키인가 뭔가 하는 강아지 엄청 귀엽지 않수까?"
"으이그... 웰시코기."
"워키토키는 뭐였수까?"
"그건 무전기. 치익- 본부 나와라, 오버. 할 때 쓰는 거."
"아...? 하하하하! 그런 거였수까? 어쩐지 입에 착착 붙는다 했수다."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는 녀석을 보며, 나 역시 운전대를 잡은 채 큭큭거리며 웃어버렸다. 가끔 이렇게 어설프게 아는 척을 하는 순백의 병운이가 나는 하나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칼슘과 철분을 '칼분과 철슘'이라고 바꿔 부르시던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웃음 끝에 이내 입이 찢어지라 커다란 하품을 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덜컥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내 연인이 너무 반갑기도 하고, 애인이 되고 난 후 처음 맞이하는 아침에 잠도 푹 못 자게 녀석의 몸을 뒤적거리고 괴롭혀댔던 내 미련한 욕심이 후회됐다. 이제 집도 합치기로 했고 앞으로 평생을 내 옆에 두고 실컷 만질 수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원래는 시원한 극장에 가서 영화라도 한 편 볼까 했지만, 어두컴컴한 상영관에 들어가면 진이 빠진 녀석이 백발백중 곯아떨어질 게 뻔했다. 게다가 옆자리에서 무방비하게 자는 녀석을 보면, 내 못된 손버릇이 또 발동해서 녀석의 몸을 만지작거릴 것 같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나는 조용한 로우파이 팝 음악을 틀어놓고 한참을 달려 동해 바다로 향했다. 병운은 목적지도 모른 채 내내 조수석에서 재잘거리다가, 어느새 기어봉에 얹어 둔 내 손 위로 자신의 크고 투박한 손을 포개어 꽉 쥔 채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밀폐된 차 안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주는 특권이었다.
녀석의 규칙적이고 깊은 숨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해안 도로는 비현실적일 만큼 평화로웠다.
차창 밖으로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였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녀석이 파르르 눈꺼풀을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음... 헉! 에고, 형님 운전하시는데 제가 미쳤지, 잠들어 버렸수다... 진짜 죄송함다, 형님."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쥔 손에 힘을 꾹 주는 녀석을 향해, 나는 나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곤할 만도 하지. 내가 아침에 너 잘 때 얼마나 만지작거리고 장난을 쳐댔는데."
"헤헤... 그래도 저는 하나도 안 싫었수다. 오히려 매일매일 그렇게 괴롭혀주셨으면 좋겠수다."

아직 잠이 덜 깨서 잔뜩 잠긴 목소리로 능청을 떠는 녀석의 까슬한 턱을 가볍게 긁어주며, 우리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8월이 한풀 꺾여가고 있었지만,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갑고 무더웠다. 맑고 푸른 동해 바다의 백사장에는 막바지 피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파라솔 아래서 웃음을 터뜨리는 연인들도 보이고, 튜브를 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무리들도 가득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시선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남남 커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대중의 열기와 수많은 시선들에 나도 모르게 몸이 살짝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병운아, 온 김에 우리도 바닷가나 좀 걸을까?"
내 제안에 병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찬성이우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제주도 갔을 때도, 바다를 보기만 했지 이렇게 해변을 같이 거닐지는 않았지 않수까?"
우리는 모래사장 초입에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고, 맨발로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는 차 안에서처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낄 수는 없었다. 그저 평범한 선후배가 바다를 보러 온 것처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나란히 걸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킨십이 없다고 해서 녀석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병운은 이 복잡한 군중 속에서 수컷 특유의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며, 지독할 만큼 예민하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해변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고등학생 무리가 내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한 찰나였다. 언제 움직였는지, 병운의 거대한 몸집이 훅 다가오더니 굵고 단단한 팔뚝으로 내 등허리를 감싸 제 가슴팍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형님, 조심하십서. 이쪽으로 붙어서 걸으시고요."
내 등을 감싼 녀석의 팔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게 얇은 티셔츠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병운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딱 자연스러운 스킨십의 경계선 안에서 철저하게 내 바깥쪽 방파제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짐승 같은 체향과 그 압도적인 피지컬이 주는 보호 본능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뒷목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어휴, 사람 진짜 많네. 그러게. 제주도에서는 네가 짜온 그 빡센 가이드 일정 따라다니느라 바빴잖아. 오름이며 숲길이며 좋은 산 구경은 실컷 했는데, 정작 바닷가를 여유롭게 걸을 시간은 없었지."
나는 애써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아, 그때는 제가 형님한테 제주도 산골짜기 숨겨진 좋은 데 다 보여드리고 싶어서 욕심을 좀 냈수다. 바다야 뭐 차 타고 가면서 실컷 볼 수 있으니까 일부러 일정을 숲으로만 돌렸지 않수까. 근데 바닷가를 이렇게 같이 걷는 건 또 느낌이 완전 다릅니다."
병운은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작게 웃었다.
"그때 별방진에서 바다 볼 때는, 형님이 제 옆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숨이 다 막혔수다. 속으로 엄청 끙끙 앓으면서 사진 한 번 같이 찍어보겠다고 용을 썼는데."
"..."
"근데 지금은 이렇게 대낮에, 사람들 다 보는 바닷가에서 같이 걷고 있수다. 비록 손은 못 잡아도 말입니다."
녀석의 말에 우리는 인적이 조금 드문, 거대한 테트라포드가 쌓여 있는 방파제 끄트머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끄러운 인파의 소음이 파도 소리에 묻혀 한결 잦아들 무렵,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사람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사각지대에 도착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병운이 억눌렀던 숨을 토해내며 나를 방파제 벽 쪽으로 훅 밀어붙였다.

"읏... 병운아?"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녀석의 크고 투박한 솥뚜껑 같은 손이 내 두 손을 덥썩 잡아채어 빈틈없이 깍지를 꼈다. 등 뒤로는 차가운 콘크리트 벽이 닿았지만, 내 앞을 완벽하게 가로막고 선 100kg 거구의 몸에서는 용광로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진짜 꿈만 같수다. 오늘 형님이 같이 살자고 해주셨을 때, 나 사실 속으로 엄청 울었수다."
"아까 그래서 밥 먹다 말고 덤벼들 듯이 다가온 거야?"
"예. 너무 좋아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수다."
맞잡은 두 손을 녀석이 제 넓은 가슴팍 쪽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옷자락 너머로 쿵쾅거리는 녀석의 묵직한 심장 박동이 깍지 낀 손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사람들 앞에서는 형님 불편하실까 봐 참았는데, 단둘이 있으니까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형님이 지겹다고 밀어낼 때까지, 아니 밀어내도 찰거머리처럼 딱 붙어서 형님 옆에서 걸을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저 떼어놓고 혼자 어디 가실 생각 꿈도 꾸지 마십서."
방파제 너머로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우리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헤집고 지나갔다. 나는 녀석이 쥔 손에 더욱 꾹 힘을 주어 마주 잡으며,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누가 할 소릴. 나 요새 집 합치면 내 전용 셰프 겸 밤낮으로 부려 먹을 매트리스 생겨서 엄청 신났으니까, 네가 도망가고 싶어도 절대 안 놔줄 거야."
"도망은 무슨! 형님 침대에 뼈를 묻을 거라니까요!"
우리는 철썩이는 파도를 배경 삼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내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우리는 세상을 향해 대놓고 손잡고 걸을 수 없는 서툰 초보 연인일지 몰라도, 이렇게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맞잡은 손의 온도만큼은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선명했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 아래서, 우리는 방파제의 그늘에 숨어 한참 동안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나누는 이 찌릿한 스킨십과 느른한 오후의 데이트가, 오늘 밤 이 거대한 짐승과 함께 맞이하게 될 '진짜 세 번째 밤'을 위한 완벽한 전초전 같았다.
방파제 그늘에서 은밀한 긴장감을 나눈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바닷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늘 투박한 된장찌개나 불고기 같은 집밥, 혹은 기사식당만 전전하던 우리에게 이런 분위기는 낯설다 못해 생경했다.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 앞에 앉은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좁은 레스토랑 의자가 비명을 지를 듯 녀석의 거대한 덩치를 겨우 받아내고 있었고, 굵직한 팔뚝은 섬세한 와인 잔이나 포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녀석은 커다란 손으로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넘기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저 이런 데는 진짜 태어나서 처음 와 봤수다. 포크가 왜 이렇게 많수까? 왼쪽부터 쓰는 겁니까?"
"으이구, 그냥 편한 대로 해. 너 먹고 싶은 거 다 시키고."

스테이크가 나오자 녀석은 쩔쩔매며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100kg이 넘는 사내가 작은 나이프를 쥐고 끙끙대는 꼴이 하도 귀여워서, 나는 결국 웃으며 녀석의 접시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가 능숙하게 고기를 썰어 병운의 입으로 내밀자, 병운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크게 벌려 고기를 받아먹었다.
"와... 진짜 입에서 녹습니다. 형님이랑 이런 데 오니까 제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고 막 그렇수다."
창밖으로 짙게 깔린 밤바다의 야경과 녀석의 행복한 미소가 어우러졌다. 우리는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앞으로 이 집에서 함께 채워나갈 아침과 저녁들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휴일의 끝자락이 아쉬웠지만, 돌아갈 곳이 '우리 집'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든든했다.
밤공기를 가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좁은 현관에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놓이는 소리가 유난히 기분 좋게 들렸다.
"형님 먼저 씻으십서. 제가 뒤정리 좀 하고 들어가겠수다."
나는 녀석의 배려에 먼저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몸을 녹였다. 잠시 후,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병운이 교대하듯 욕실로 들어갔다. 좁은 욕실 너머로 쏟아지는 물소리와 뽀얀 수증기, 그리고 이내 비누 향을 잔뜩 머금고 수건 한 장만 걸친 채 나오는 녀석의 압도적인 맨몸. 가로등 불빛만 은은하게 스며드는 방 안에서, 녀석의 거대한 실루엣은 낮보다 훨씬 더 짙은 남성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넓은 퀸사이즈 침대 위로 나란히 누웠다. 에어컨을 틀어 방 온도를 낮춰 두었지만 얇은 여름 이불 아래로 녀석의 뜨거운 체온이 훅 끼쳐왔다. 일주일의 그리움과 낮 동안의 설렘, 그리고 이제는 완벽한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뒤섞인 밤이었다.
"병운아."


내가 나지막이 부르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틀어 나를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까만 눈동자는 욕망과 애정으로 점철되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녀석의 크고 거친 손바닥이 내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예, 형님. 저 여기 있수다."
녀석의 굵은 목소리가 귓가를 낮게 울렸다. 나는 녀석의 단단한 어깨 위로 팔을 감으며 녀석을 더 깊숙이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낮 동안 억눌렀던 텐션이 둑이 터지듯 폭발했다.
"읍... 하아..."
지난 번의 서툴고 급했던 입맞춤과는 달랐다. 녀석의 혀는 내 입안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탐닉하며 나의 숨결을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녀석의 묵직한 체중이 내 위로 실리자 침대 매트리스가 깊게 가라앉았고, 녀석의 거대한 흉근과 내 가슴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얇은 천 너머로 요동치는 녀석의 심장 박동이 내 온몸으로 전해졌다.
녀석의 거칠고 두꺼운 손이 내 가슴을 전체적으로 쓸어 내렸다. 평생 거친 현장에서 노동으로 다져진 녀석의 손은 지독할 만큼 뜨겁고 투박했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내 여린 살결을 유영할 때마다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형님... 진짜 너무 예뻐서 미치겠수다. 하루 종일 만지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는지 아수까?"
병운은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짐승처럼 낮게 그르렁거렸다.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내 목과 쇄골을 자극하며 짜릿한 마찰열을 일으켰다. 녀석의 한 손은 내 허리를 부서질 듯 꽉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어느새 내 하반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내려갔다.
두꺼운 면직물 너머로 전해지는 녀석의 묵직하고 뜨거운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녀석은 내 허벅지 사이로 제 단단한 다리를 밀어 넣으며, 100kg의 거구를 이용해 나를 완벽하게 제압해왔다.
"아흑... 병운아... 강병운..."
나는 녀석의 넓은 등짝을 손톱이 박히도록 꽉 움켜쥐며 신음을 토해냈다. 녀석의 집요한 손길이 내 가장 은밀한 곳에 닿았을 때, 나는 활처럼 허리를 튕기며 녀석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녀석은 숙련된 맹수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하고도 끈적한 애무가 이어졌다. 녀석은 내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표식을 남기려는 듯 입술과 혀로 내 살결을 유린했다. 특히 아침에 내가 괴롭혔던 녀석의 가슴 정점을, 이번에는 녀석이 내 가슴을 향해 똑같이 되돌려주며 나를 극한의 쾌락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 벼, 병운아... 잠깐...!"
"안 됩니다. 오늘 밤은 절대 안 놔줄 거니까요. 형님 제 발바닥까지 다 좋다고 하셨지 않수까. 저도 형님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끝까지 다 먹어버릴 겁니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소유욕과 갈증이 서려 있었다. 평소의 순박한 곰탱이는 온데간데없고, 내 눈앞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포식자만이 남아 있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두 남자의 육체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하얗고 통통하기만 한 나의 상체와, 그 위를 덮치고 있는 시커멓고 거대한 녀석의 피지컬. 녀석의 굵은 핏줄이 솟아오른 팔뚝이 내 양 손목을 침대 위로 꾹 눌러 고정했다.
"하아... 하아... 형님... 진짜 사랑합니다. 죽을 때까지 내 옆에만 있으십서."
녀석의 눅진한 고백과 함께, 우리의 세 번째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끈적하게 타올랐다.
이 거구와 온몸을 빈틈없이 맞대고 살을 비비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압도적인 자극이었다. 녀석은 내 두 다리 사이로 굵고 단단한 허벅지를 밀어 넣고, 무겁게 달아오른 서로의 하반신을 빈틈없이 밀착시켰다.
"하아... 형님, 진짜... 닿기만 했는데도 미칠 것 같수다."
녀석의 거칠고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를 집어삼켰다. 땀방울이 맺힌 녀석의 시커먼 대흉근과 내 하얀 가슴이 맞닿아 미끄러질 때마다, 짐승 같은 거친 숨소리와 질척한 마찰음이 조용한 방 안을 외설스럽게 채워갔다. 녀석은 내 허리를 두 손으로 부서질 듯 꽉 움켜쥔 채, 마치 내 안으로 파고들 듯이 묵직하고 짐승 같은 허릿짓을 시작했다.
"읏...! 아, 병운아...!"
맞붙은 두 중심이 땀과 타액에 젖어 뜨겁게 비벼질 때마다, 등골을 타고 척추 끝까지 찌릿한 전율이 치솟았다. 녀석의 체중이 실린 골반이 내 허벅지 안쪽과 하복부를 쾅쾅 짓누르며 뭉근하게 문질러올 때마다 나는 시트를 쥔 손에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며 활처럼 허리를 튕겼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하고도 집요한 애무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녀석은 자신의 단단한 배와 허벅지로 내 하반신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동시에, 고개를 숙여 내 쇄골과 젖가슴을 뜨거운 혀로 진득하게 핥고 빨아당겼다.
"쯉... 하아, 형님... 냄새 너무 좋수다. 피부도 너무 부드럽고..."
"아아...! 그만, 거기, 흐앗!"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내 여린 살결을 거칠게 긁고 지나가고, 녀석의 두꺼운 혀가 내 가슴의 정점을 집요하게 굴릴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나는 갈 곳을 잃은 두 손으로 녀석의 땀에 젖은 뒷머리를 헤집고, 짐승처럼 꿈틀거리는 넓은 등 근육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헐떡였다.
행위가 거칠어질수록 방 안의 온도는 용광로처럼 치솟았다. 서로의 타액과 땀, 그리고 잔뜩 달아올라 흘러나온 열기들이 뒤섞여 우리 두 사람의 몸은 경계선을 알 수 없을 만큼 미끄럽고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내 온몸을 훑어 내리는 녀석의 크고 거친 손길에, 얄팍한 이성 따위는 이미 녹아내린 지 오래였다. 녀석의 집요한 애무에 속수무책으로 달아오른 내 중심이 터질 듯이 팽창하며 꼿꼿하게 일어섰다.
그걸 눈치챈 병운이 낮게 숨을 들이켜더니, 아직 내 하반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남은 속옷마저 단숨에 벗겨내어 침대 아래로 던져버렸다.
"읏... 병운아...!"
완벽한 맨몸이 된 내 다리 사이로 녀석이 커다란 몸을 훅 숙였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내 중심을 제 크고 두꺼운 입술 사이로 정성스럽게 머금었다.
"흐아앗...!"
예상치 못한 노골적이고 질척한 감각에 나는 허리를 활처럼 튕기며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까슬한 턱수염이 여린 허벅지 안쪽을 스치고, 뜨겁고 축축한 혀가 가장 예민한 곳을 빈틈없이 핥아 올리며 진득하게 삼켜내는 그 압도적인 자극.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그 맹목적인 태도에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하아... 잠깐, 너... 읏...!"
숨이 넘어갈 듯한 쾌감에 헐떡이며, 나는 녀석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꽉 틀어쥐었다. 평생 거친 일만 하던 녀석이 이런 섬세하고 파괴적인 애무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흐읏,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어...?"
내 당황 섞인 물음에, 병운이 잠시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맺힌 타액을 혀로 살짝 핥아낸 녀석은, 충혈된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배우긴요. 손으로 하듯 입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을 마친 녀석이 다시금 고개를 숙여 더 깊고 노골적으로 나를 탐해왔다. 짐승 같은 포식자의 얼굴과, 내게 칭찬받고 싶어 안달 난 대형견의 얼굴이 동시에 교차하는 그 아찔한 간극에 나는 완전히 항복해버리고 말았다.
"아아...! 병운아, 아, 나...!"
결국 녀석의 혀끝이 만들어낸 지독한 황홀경 속에서, 나는 녀석의 입안으로 파들파들 떨며 뜨거운 열기를 남김없이 쏟아냈다.
"하아... 하아..."
파도처럼 휩쓸고 간 절정의 여운에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녹초가 되어 침대에 널브러졌다. 녀석은 내 잔해를 삼켜낸 뒤, 젖은 내 허벅지와 아랫배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내게 완벽한 만족을 안겨준 녀석의 하반신은 여전히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채 불규칙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배려하듯 침대 밑으로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제 커다란 손으로 직접 자신의 묵직한 중심을 위로하려 쥐는 것이 보였다.
'이 바보 같은 곰탱이.'
나는 아직 쾌감의 여운으로 나른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투박한 손을 움직이려는 녀석의 굵은 허벅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내 쪽으로 바짝 당겼다.
"어... 혀, 형님?"
나는 침대 끝에 무릎을 꿇고 다가앉아, 녀석의 허리춤을 내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당황해서 굳어버린 녀석의 탄탄한 복근에 뺨을 한 번 비비적댄 나는, 주저 없이 녀석의 거대하고 뜨거운 중심을 향해 입술을 벌렸다.
"흣...! 아, 아아! 형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갑작스러운 내 입술의 감촉에 놀란 병운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나는 녀석의 단단한 엉덩이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서툴지만 온 마음을 다해 녀석의 가장 뜨거운 곳을 입안 가득 머금고 혀로 둥글리자, 100kg의 거구가 감전된 것처럼 파들파들 떨며 내 머리칼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어왔다. 녀석의 것에 내 이가 닿일까봐 턱에 힘을 주느라 꽤 힘들었지만 따스한 게 채워진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살짝 뗀 채,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의 까만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있어. 내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
입가에 짙은 애정이 담긴 미소를 띤 채, 나는 녀석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밖에 모르는 곰돌아."
그 다정하고도 치명적인 도화선은, 병운이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완벽하게 불태워버렸다.
"흐아앗... 형, 형님...! 아흑!"
녀석의 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날것 그대로의 헐떡임이 터져 나왔다. 내 입술 안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녀석의 중심이 터질 듯이 맥박 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내리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까만 눈동자와 집요하게 눈을 맞춘 채 혀끝을 더욱 농염하게 굴렸다.
예민한 끝부분을 진득하게 핥아 올리고, 이따금 입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강하게 빨아당길 때마다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가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떨렸다.
"하아... 하아, 아...! 미치, 미치겠수다... 형님, 읏...!"
병운의 두꺼운 허벅지 근육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팽창했다. 녀석의 커다란 두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매다, 이내 부서질 듯 소중한 것을 다루듯 내 양 뺨과 젖은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나를 수십 번도 더 짓누를 수 있는 이 거대한 수컷이, 오로지 내 혀의 움직임 하나에 완전히 통제권을 빼앗긴 채 쾌감의 탁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녀석의 탄탄한 복근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굵은 핏줄이 솟아오른 치골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녀석의 뜨겁고 거친 숨결이, 방 안의 산소를 모두 태워버릴 듯 질척했다.
"형, 형님... 나, 나 진짜...! 하아, 쌀, 쌀 것 같수다...!"
마침내 한계치에 다다른 병운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녀석은 쾌감에 눈물이 핑 돌 만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겁지겁 내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흐읏...! 안 됩니다, 비키십서! 형님 입, 입에 어떻게... 아, 앗!"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혹여나 내 얼굴을 더럽힐까 봐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는 그 미련하고도 다정한 배려. 나는 그게 더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오히려 녀석의 단단한 골반을 두 손으로 꽉 틀어쥐고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도망가지 마. 네 모든 걸 다 받아줄 테니까.'
나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며, 오히려 고개를 더 깊이 숙여 녀석의 가장 뜨거운 곳을 한계까지 깊게 머금었다.
"아아아악!! 형님...!!"
순간, 짐승의 단말마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내 양 뺨을 쥔 병운의 손에 꾹 힘이 들어가고,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가 뻣뻣하게 굳어지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녀석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른 지독히도 뜨겁고 농밀한 열기가, 내 입안을 향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목울대를 움직여 녀석이 쏟아내는 그 뜨거운 애정과 쾌감의 잔해들을 남김없이,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삼켜냈다. 녀석의 몸이 잘게 경련하며 마지막 열기까지 쥐어짜 내는 그 순간까지, 나는 녀석의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고 다정하게 입술을 문질러주었다.
"하아... 하아... 끄어..."
폭풍 같은 절정이 휩쓸고 지나간 뒤.
다리에 힘이 완벽하게 풀려버린 100kg의 거구가 무너지듯 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으윽, 무거워..."
내가 투덜거리면서도 두 팔을 벌려 안아주자, 병운은 내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땀에 젖은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짐승의 거칠었던 숨소리는 어느새 훌쩍거리는 듯한 앓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형님... 진짜... 하아... 어떡합니까, 진짜..."
녀석은 내 허리를 부서질 듯 꽉 끌어안은 채, 내 뺨과 턱선, 귓바퀴에 정신없이 뽀뽀를 쏟아부었다. 그 커다란 덩치를 동그랗게 말고 내 품에 파고드는 꼴이, 주인의 사랑에 벅차올라 어쩔 줄 모르는 완벽한 대형견 그 자체였다.
나는 녀석의 땀에 젖은 흑발을 다정하게 쓸어넘겨 주며, 나른하게 풀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넌 이제 평생 내 침대에 뼈 묻는 거지."
그 말에 병운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시뻘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예. 저 진짜 안 나갈 겁니다. 누가 뭐래도 형님 옆에 딱 붙어 있을 겁니다."
"나도. 네 옆에만 있을 게. 사랑해. 내 곰돌이."
"저도 사랑합니다. 내 사람."

달빛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여름밤의 침대 위. 우리는 서로의 타액과 땀으로 범벅이 된 미끄러운 맨몸을 빈틈없이 겹쳐 안았다. 위층과 아래층, 영원히 평행선일 줄 알았던 두 개의 외딴섬은 마침내 하나의 견고한 세계가 되었다. 내 평생을 온전히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무식하게 크고 눈부시게 완벽한 나의 안식처였다.
END (完)
[에필로그] 나란히 걷는 시간
"지글지글, 촤아아-"
일요일 늦은 아침. 나른한 늦잠을 깨운 건 거실에서 들려오는 집 안을 가득 채운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짜장라면 냄새였다.

"음..."
나는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헝클어진 머리로 침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주방 쪽에 시선을 둔 순간, 하마터면 헛숨을 들이켤 뻔했다.
"일어나셨수까, 형님. 마침 타이밍 딱 맞게 졸여지고 있수다. 일요일엔 역시 짜파게티 아니겠수까."
인덕션 앞에 서서 젓가락으로 냄비를 휘젓고 있는 녀석의 차림새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아니, 절경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대하고 시커먼 맨몸.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둘러진 것은, 내가 예전에 마트에서 대충 사다 놓았던 노란색 체크무늬 앞치마가 전부였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넓은 등판과 단단한 엉덩이 굴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로,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 강병운... 너 지금 그 꼴이..."
"아, 이거요? 씻고 나왔는데 형님 깰까 봐 옷장 문 열기도 조심스럽고, 배는 고파서 면부터 삶다 보니... 뭐, 어차피 우리 둘밖에 없는데 어떻수까. 형님도 제 이런 모습 엄청 좋아하시는 눈치던데."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능청스럽게 씩 웃었다. 앞치마 너머로 다 가려지지 않는 녀석의 탄탄한 허벅지와, 묘하게 시선을 끄는 묵직한 실루엣에 나는 결국 아침부터 헛기침을 하며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진짜... 뻔뻔해졌다니까."
"다 형님한테 배운 거 아니겠수까. 자, 얼른 앉으십서. 불기 전에 먹어야 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파게티 위로 완벽한 반숙 계란 프라이가 얹어졌다. 우리는 좁은 식탁에 마주 앉아 나란히 젓가락을 들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스턴트 라면 한 그릇이었지만, 눈앞에 마주 앉은 이 거대하고 다정한 남자와 함께하는 주말 아침의 풍경은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만찬보다 달콤했다.
녀석이 내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짐을 합친 지도 어느덧 계절이 한 번 바뀌어 있었다. 그사이 우리에게는 꽤 많은, 그리고 아주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겨났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병운의 직장이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난 뒤, 나는 매일 밤낮이 바뀌어 쿠팡 물류센터로 출근하는 녀석의 굽은 등과 멍든 어깨를 보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결국 "돈은 천천히 갚아도 되니까 제발 몸 상하는 일 좀 그만둬라. 나 밤에 너 없어서 혼자 자기 무섭다"라는 나의 반 협박과 끈질긴 회유 끝에, 녀석은 미련 없이 야간조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내가 일하는 학원에서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으시던 기사님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갑작스레 관두게 되신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원장님께 병운을 추천했다. 대형 면허도 있고, 성실함 하나는 내가 보증한다고.
처음 학원 차량 기사로 출근하던 날, 산적같이 크고 험상궂은 녀석의 외모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겁을 먹을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기우였다.

"안녕~! 조심해서 타십서!"
특유의 그 사람 좋은 빙구 웃음과, 아이들이 탈 때마다 행여나 머리를 부딪힐까 커다란 손으로 차 문짝을 덧대어주는 세심함. 녀석은 금세 학원의 인기 스타 '곰돌이 기사님'이 되어 있었다.
"형님, 오늘 파김치 맛있지 않수까? 더 드릴까요?"
볼이 미어터져라 면발을 흡입하며 묻는 녀석의 입가에 묻은 짜장 소스를,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닦아주었다.
"어. 맛있어. 근데 나는 파김치보다 네가 더 맛있어 보이는 것 같은데."
"켁! 쿨럭! 혀, 형님! 밥 먹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지 마십서!"
새빨개진 얼굴로 사레가 들려 가슴을 치는 녀석을 보며 나는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이 놀려먹는 재미는 평생 질리지가 않을 것 같다.
평일의 일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출근 시간은 서로 달랐다. 나는 오후 수업에 맞춰 출근하고, 병운은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조금 일찍 학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만큼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었다.
밤 10시. 학원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하원 차량 운행을 마친 녀석은, 텅 빈 노란색 학원 승합차를 몰고 학원 앞 비상등을 켠 채 나를 기다렸다.
조수석 문을 열고 타면,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피곤해진 녀석의 옅은 땀 냄새와, 꿀물 두 개가 놓인 컵홀더가 나를 반겼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수다, 형님."
"너도 꼬맹이들 태우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어두운 차 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어봉 위에서 자연스럽게 두 손을 맞잡았다. 거칠고 투박한 녀석의 굳은살 박인 손이 내 손을 따뜻하고 빈틈없이 얽어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우리만의 좁고 안전한 세계. 노란색 학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30분의 퇴근길 드라이브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었다.
"저녁은 뭐 먹을까요, 형님? 집에 가는 길에 치킨 한 마리 포장해 갈까요?"
"좋지. 맥주도 시원하게 한 캔 하자."
신호 대기 중, 녀석이 맞잡은 내 손등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밤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이 녀석의 깊고 다정한 눈동자 안에 반짝였다.
위층과 아래층.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공간의 평행선은, 이제 같은 침대에서 살을 맞대고 눈을 뜨는 하나의 교점으로 맞춰졌다. 그리고 지독하게 엇갈리기만 하던 우리의 밤낮 역시, 텅 빈 학원 차 안에서 함께 맞잡은 손을 통해 나란히 같은 궤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집으로 돌아와 마주 앉아 야식을 먹고, 따뜻한 물로 씻고, 넓은 침대 위에서 서로의 체온을 온전히 나누며 잠드는 평범하지만 완벽한 일상.
나를 살게 하는 이 소란스럽고 듬직한 나의 안식처. 우리의 계절은 앞으로도 이토록 다정하게, 멈춤 없이 흘러갈 것이다.
마지막 화가 용두사미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서툰 초보 작가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네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시즌2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열심히 병운이와 민후의 일상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동안 기다려주고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