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분노조절잘해된 썰 (4편)
4편. 뱃고동 소리
만신창이가 된 곰탱이를 2층 우리 집 거실로 끌어들이겠다는, 생존을 위한 얄팍한 타협안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하고 아늑한 내 전셋집의 공기가 평소와는 다르게 묘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씻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신경은 자꾸만 위층으로 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거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2층 천장을 타고 내려왔다. 3층 한량이 귀가한 게 분명했다. 뒤이어 두어 명의 남자가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며 내는 쿵, 쿵거리는 진동 때문에 내 방 공기가 살짝 울렸다.
'제기랄, 또 시작인가.'
조건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웬일인지 소음은 더는 폭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실을 가득 채우던 분주한 발걸음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고 조심스럽게 바뀌더니, 이윽고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가 친구들을 자제시키는 거겠지. 병운의 그 투박한 성격상, "이제 내 걱정하지 말고, 내일부터는 안 와도 된다"고, 그 거구의 친구들을 얌전히 타이르고 있을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3층은 평소처럼 시끄럽지 않았는데도, 내 귀에는 그 고요함조차 묵직하게 들렸다. 아까 편의점에서 들었던 그의 처절한 사연 때문이었을까. 내 천장을 뒤흔들던 그 끔찍한 소음들이, 이제는 분노 대신 낯선 감정으로 치환되어 다가왔다.
나는 옅게 들리는 소음을 가려보려고, 폰을 집어들어 음악을 틀었다.
♪ Swim, swim
Water falling off your skin
Swim, swim
I could spend a lifetime watching you
Swim, swim
This is how it all begins
Swim, swim
I just wanna dive
I just wanna dive
폰과 연결된 마샬 블루투스 스피커와 위층의 둥둥 거리는 소리가 뭔가 묘하게 어울어져 묵직한 베이스를 만들어갔다. 이는 더는 층간소음이 아니었다. 안개 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거대한 선박이, 제 존재를 알리려 필사적으로 토해내는 저릿한 뱃고동 소리처럼 내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다.
오히려 그 묵직한 진동이 묘한 안도감과 함께, 내 안의 은밀한 갈증을 미친 듯이 부추기기 시작했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본 채, 아까 편의점의 파르르 떨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마주했던 병운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고 탐욕스럽게 복기했다.
싸구려 파란색 아디다스 저지가 터질 듯 팽팽하게 감싸고 있던 그 압도적인 육체.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에 달아올라 목덜미를 타고 끈적하게 흐르던 번들거리는 땀방울들... 그건 마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과즙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툭 건드리면 짙은 단물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탐스럽고 붉은 열매 같았다. 당장이라도 다가가 그 껍질을 혀끝으로 핥아내며, 그 안에 가득 찬 농밀한 수컷의 진액을 죄다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목이 다 늘어나 헤진 티셔츠를 입고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구겨져 앉은 꼴은 영락없이 궁상맞은 백수건달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비참함이 그의 원초적인 야수 냄새를 더욱 짙게 풍기게 만들었다. 덥수룩하게 돋아난 턱수염 아래로 굵게 뻗은 목선과, 숨을 쉴 때마다 들썩이던 산맥 같은 가슴팍. 그건 마치 밀렵꾼의 덫에 걸려 다리를 다친 채, 좁고 퀴퀴한 우리 속에 갇혀 숨을 헐떡이는 거대한 흑곰 야수 같았다. 당장이라도 다가가 그 거칠고 뜨거운 가죽을 쓸어내리며, 짐승처럼 핥고 빨아주고 싶게 만드는, 묘하게 가학심을 자극하면서도 내 손을 뻗게 만드는 미치도록 완벽한 피지컬이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강사 특유의 직업병과 같은 특유의 이성적인 의구심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뭘 했길래 지금까지 저런 궁상맞은 꼴로 모아둔 것도 없을까.'
내 분석적인 직업병이 발동했다. 단순히 멍청해서 사기를 당한 걸까. 아니면 저 짐승 같은 힘만 믿고 어린 시절을 양아치로 살다가 이제야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꺾여버린 케이스인가. 그 탄탄한 다리는 왜 저는 걸까. 점장한테 덤터기를 썼다면서 왜 그걸 다 뒤집어쓰고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던 건가. 어제 밤에 찾아와 멱살을 잡았던 험악한 놈들은 누굴까.
하지만 그 알량한 이성적 분석들은, 끈적하게 달아오른 그의 육체적 이미지 앞에서 모래성처럼 힘없이 허물어졌다.
내 머릿속은 다시 그의 두꺼운 허벅지와 땀에 젖은 흉통으로 가득 찼다. 쿵... 쿵... 그의 육중한 발바닥이 3층 바닥을 디딜 때마다, 그 미세한 진동이 내 방안을 꽉 채우는 풍부하고 농밀한 뱃고동 소리로 둔갑해 내 고막을 애무하고 있었다.
위층이 완전히 고요해지자, 나는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지독한 아쉬움마저 느꼈다. 그 수컷 냄새 진동하는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모레쯤엔 내 집 거실 바닥 위에서, 내 손끝 아래에서 직접 울려 퍼지길 미친 듯이 바라고 있었다.
다음 날, 마지막 논술 첨삭반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속도로 가방을 챙겼다.
"정 선생,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동작이 엄청 빠르네."
옆 자리 동료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리고는 도망치듯 학원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벼웠다. 나는 잰걸음으로 걷다 말고, 쇼윈도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대체 뭘 기대하고 이렇게 들떠 있는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고 자부하는 학원 강사가 퇴근길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유가 고작... 보증금 500에 월세 30짜리 방에 사는, 전기세조차 못 내서 사채업자한테 멱살을 잡히는 전직 노가다판 백수 건달 때문이라니. 심지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수면권을 처참하게 짓밟아 죽이고 싶었던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수면권 확보를 위한 합리적인 타협'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 보았지만, 그건 얄팍한 기만에 불과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어젯밤 가로등 아래서 보았던 그 터질 듯한 파란색 아디다스 저지와, 땀에 절어 번들거리던 굵은 목덜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수컷의 냄새를 좁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이 아니라, 내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인 쓰리룸 거실에서 온전히 독점하고 싶다는 그 저급하고 궁상맞은 욕망.
나는 그 거대한 곰탱이가 내 거실 바닥에 앉아 뿜어낼 그 짙은 페로몬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 내 자신이 징그러우면서도, 동시에 미칠 듯이 흥분되는 이중적인 감정에 시달렸다.
동네에 도착한 나는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습관처럼 단골 편의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명 어제 그 인간보고 술을 사 오라고 엄포를 놓았건만, 내 손은 이미 4캔 만 원짜리 싸구려 맥주가 아니라 제법 값이 나가는 수입 맥주와 그럴싸한 육포 안주를 쓸어 담고 있었다. 계산대 앞에 서서 카드를 내미는 순간, 지독한 자괴감이 명치를 치고 올라왔다.
'나 지금... 그 상거지 새끼한테 잘 보이려고 안주까지 세팅하는 거야? 하하.. 정민후, 뭔 정신이냐. 참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허물 벗듯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그 짐승 같은 육체 옆에 앉으려면 최소한 땀 냄새는 지워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을 맞으며, 평소엔 대충 펌핑하던 바디워시를 두 번이나 짜서 몸을 닦아내는 내 손길이 한없이 처량하고 우스웠다.
물기를 대충 닦고 나와 헐렁한 반바지와 면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맥주와 육포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세팅해 놓고 나니 영락없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꼴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밤 11시.
'설마 안 내려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어제 일은 술김에 한 헛소리라고 생각했나?'
초조함에 다리를 떨며 천장을 노려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발 들리지 않기를 바랐던 그 육중한 뱃고동 소리가, 오늘따라 미치도록 간절했다. 제발 그 무식하게 두꺼운 허벅지를 이끌고, 쩔뚝거리는 다리로 내 현관문을 두드려 주기를. 나는 이성적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발정 난 짐승처럼, 천장만 뚫어져라 올려다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띵동.
짧고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적막하던 거실을 날카롭게 찢었다. 순간, 심장이 명치 끝에서부터 덜컹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파에서 튕겨 오르듯 일어났다가, 스스로의 경박함에 놀라 헛기침을 하며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침착해, 정민후. 넌 그냥 층간소음 가해자를 감시하는 피해자일 뿐이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현관으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은, 이미 기대감으로 미친 듯이 달아올라 있었다. 도어록을 열고 무심한 표정을 장착한 채 문을 당겼다.

"어... 그, 왔수다."
센서등이 켜지며 어둠 속에 서 있던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하마터면 입을 벌린 채 얼빠진 탄성을 내뱉을 뻔했다.
어제 그 땀에 절어 궁상맞던 꼬락서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무려 '씻고' 온 것이다. 아직 물기가 덜 마른 짧은 머리카락 아래로 샴푸와 비누가 섞인 풋풋한 체취가 훅 끼쳐왔다. 게다가 이 인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옷을 주워 입고 온 건가.
아무런 무늬도 없는 얇은 까만색 반팔 티셔츠는 그의 태평양 같은 어깨와 빵빵하게 부푼 대흉근을 감당하지 못해 천이 팽팽하게 울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까만 면 소재 위로 그의 잔뜩 성난 근육의 윤곽이 노골적으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내 시선을 완전히 강탈해 간 건 다름 아닌 바지였다. 회색 츄리닝.
세상에, 저 무식하게 두꺼운 허벅지와 탄탄한 하체를 옅은 회색 면바지로 감싸다니.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천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묵직한 허벅지 근육의 움직임에, 내 이성은 이미 회로가 타버린 지 오래였다. 그 거대한 짐승이 내뿜는 날것의 수컷 냄새에 시각적인 폭력성까지 더해지니, 당장이라도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았다.
"뭐 합니까. 안 들어가고."
병운이 한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머쓱하게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내 눈길도 자연스레 그의 발끝으로 떨어졌다.
투박하고 커다란 곰 발바닥 같은 그의 두 발은, 놀랍게도 새하얀 면양말에 얌전하게 감싸여 있었다. 저 거칠고 폭력적인 덩치에, 뽀얀 흰 양말이라니. 발목을 감싼 하얀 천 위로 굵은 힘줄이 언뜻언뜻 비치는 그 묘한 대비가, 내 안의 변태적이고 은밀한 가학심을 미친 듯이 자극했다. 당장이라도 저 큰 발을 움켜쥐고 하얀 양말 위로 진득하게 코를 박고 싶을 만큼, 궁상맞은 갈증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들어와요."
나는 간신히 침을 꿀꺽 삼키며 짐짓 건조한 목소리로 길을 비켜주었다.
"실례, 실례하겠수다."
병운이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현관을 넘어섰다. 새하얀 양말을 신은 그의 큼지막한 발이 내 집 거실의 밝은 강마루 바닥에 닿는 순간.
스윽, 쿵.
아, 저 소리다. 천장을 통해서만 듣던 그 묵직하고 풍부한 뱃고동 소리가, 마침내 내 영역 안에서, 내 눈앞에서 직접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닫으며, 그의 널찍하고 단단한 등판과 회색 츄리닝 아래로 뻗은 육중한 다리를 짐승처럼 훑어 내렸다.
그는 쭈뼛거리며 거실 한가운데로 걸어오더니, 소파 대신 잘 닦아둔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반다리를 하느라 무릎을 굽히자, 그 미치도록 아찔한 회색 츄리닝 원단이 그의 육중한 허벅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질 듯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소파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 그와 마주 앉았다.
부시럭.
병운이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초록색 유리병들을 꺼내 바닥에 줄지어 세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지금... 그거 다 마시려고 사 온 겁니까?"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묻자, 병운이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 뭐... 혼자 마실 때도 서너 병은 까요. 2층 선생님도 술 좀 하는 거 같길래 넉넉하게 사 왔수다. 모자란 것보단 낫잖소."
일곱 병이라니. 내 평소 주량을 세 번은 곱해야 나오는 치사량이었다. 당황한 내 머릿속은 '저걸 다 마시면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으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그 알량한 이성은 곧바로 내 눈앞에 펼쳐진 원초적인 스펙터클에 의해 강제 종료되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병운에게 이름을 물었다.
"성함 물어봐도 됩니까? 인제는 같이 이렇게 술 한잔도 기울이는 사이인데"
"강병운입니다. 89고요. 선생님은요?"
어제는 2층, 그쪽이라고 하더니 그새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어 있다. 신기할 일이다.
"정민후. 87."
"아이고 형님이시네."

대충 집주인은 내 동년배라고 하기에 동갑이거나 더 나이가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덩치에 동생이라니 참.
병운이 무심하게 소주병 하나를 집어 들고 뚜껑을 비틀어 따는 순간이었다.
까득, 소리와 함께 그의 팔뚝에 굵은 핏대가 확 솟아올랐다. 까만 반팔 티셔츠의 짧은 소매 밑으로 드러난 억센 전완근이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단순히 노가다판에서 무거운 벽돌을 날라서 만들어진 근육이라고 하기엔, 그 뼈대와 근육의 결합 자체가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도저히 참지 못하고 홀린 듯이 물었다.
"평소에... 운동 같은 거 했습니까?"
내 질문에 병운이 소주잔에 투명한 액체를 콸콸 채우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소주병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두꺼운 팔뚝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 뭐, 척 보면 견적이 나오나 보네. 옛날에요. 아주 옛날에."
"그 덩치를 보고 그걸 모를 사람도 있나요? 무슨 운동인데요? 몸통 자체가 너무 무식하게... 아니, 너무 두꺼운데."
"유도 했었수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한답시고 땀내 나는 매트 바닥만 죽어라 굴렀지. 코치들이 무조건 중량급으로 밀어붙였거든. 뭐...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나서 그만뒀지만."
유도. 그 두 글자가 내 고막을 때리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지독하게 불순하고 궁상맞은 상상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내 눈빛이 그의 널찍한 가슴팍과 굵직한 손가락 사이를 끈적하게 핥고 지나갔다. 저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아귀에 도복 대신 내 멱살이 잡혀서, 저 육중한 회색 허벅지 아래로 속수무책으로 깔리게 된다면?
"왜 그리 빤히 봅니까. 징그럽게."
병운이 내가 준비해 둔 비싼 수입 육포를 우물거리며 툭 내뱉었다.
"아닙니다. 그냥... 그 몸뚱이로 대리운전도 못 하고 방구석에 박혀 있는 게, 참 국가적 손실이다 싶어서요."
나는 끓어오르는 변태적인 갈증을 애써 건조한 농담으로 포장하며, 그가 따라준 소주잔을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초록색 병이 세 개째 바닥을 나뒹굴 때쯤, 거실의 공기는 알코올과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열기로 눅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 주량을 아득히 넘긴 나는 알딸딸한 취기에 기대어, 턱을 괸 채 아주 노골적으로 그의 몸을 감상하고 있었다.
"근데, 그 좋은 피지컬로 왜 그만둔 겁니까? 메달권은 거뜬했을 텐데."
내가 입술을 축이며 묻자, 병운이 쓴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고는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아깝긴 무슨... 사고 쳐서 쫓겨났지. 그... 매일 밤 우리 집 문 따고 들어오던 무식한 놈들 둘 있죠? 걔네가 나랑 중학교 때부터 같이 매트 구르던 불알친구들이거든."
병운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고2 때였나. 악질 선배 하나가 유독 그 두 놈만 쥐 잡듯이 팼어요. 기강 잡는답시고 창고에 끌고 가서 빠따를 치는데... 씨발, 문틈으로 그 꼴을 보니까 눈이 홱 돌아가더라고. 들어가자마자 그 선배 새끼 멱살을 잡고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메어꽂아 버렸수다. 갈비뼈 세 대가 나갔다던가."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투박하고 커다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덕분에 걔네는 구했는데, 난 하극상에 폭력배 취급받고 바로 제명당했지 뭐. 그때부터 내 인생이 이 노가다판 굳은살처럼 꼬이기 시작한 거요. 남은 건 이 무식한 힘줄밖에 더 있나."
과거의 영광과 후회가 뒤섞인 그의 목소리가 거실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가 고개를 숙인 틈을 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저열하고 궁상맞은 사심을 '연민'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포장지로 감쌌다.
"손 좀 줘 봐요."
"예?"
내가 불쑥 손을 내밀자, 병운이 당황한 듯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회색 츄리닝 바지 위로 툭 떨어져 있던 그의 두꺼운 손목을 덥석 쥐어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읏..."
그가 놀라 짧은 숨을 들이켰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바닥을 펼쳐 내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미칠 듯이 거칠었다. 유도 매트를 움켜쥐던 굳은살 위에, 십 년 넘게 험한 공사판을 전전하며 박인 흉터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바보같이. 친구들 구하려고 자기 인생을 다 던졌으면서,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요."
나는 그의 굳은살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아주 진득하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내 손가락이 그의 거친 손바닥 결을 타고 훑어 내릴 때마다, 병운의 굵은 팔뚝에 선명하게 핏대가 솟았다. 짐승처럼 거대한 덩치를 하고서, 고작 내 손가락 놀림 하나에 어깨를 잘게 떠는 꼴이 내 가학심을 미친 듯이 자극했다.
조금 더. 이 둔한 곰탱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아주 조금 더.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로 슬쩍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 무릎을 그의 회색 츄리닝 허벅지 쪽으로 바투 붙였다. 얇은 면 소재를 뚫고 그의 탄탄하고 뜨거운 하체 체온이 내 살갗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저기... 선생님..."
갑자기 좁혀진 거리와 허벅지에 닿은 낯선 온기에 당황했는지, 병운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까만 티셔츠 위로 그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모른 척, 그의 거친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술기운에 젖은 내 눈빛이 지금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를 핥고 있는지, 이 순진하고 멍청한 짐승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당신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구석이 있네."
그건 그를 향한 위로이자, 내 안의 끓어오르는 욕정을 겨우 억누르며 내뱉은 지독한 혼잣말이었다.
순간, 병운의 거대한 손이 내 눅진한 온기로부터 흠칫하며 빠져나갔다. 그의 표정이 당황스러움과 낯선 수줍음으로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아... 덥네요. 이 집이 보일러를 많이 틀었나."
"그럴리가요. 5월이라 가끔 에어컨도 트는데요 뭘"
그는 멋쩍은 듯 마른세수를 하더니, 붉어진 목덜미를 거칠게 훔쳐냈다. 목소리는 아직도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핑계를 대며 내 시선을 피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나는 그가 당황해서 버둥거리는 꼴이 묘하게 흥분돼서,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그를 지켜보았다.
병운은 덥다는 핑계를 대며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잔 대신, 내가 먹다 남은 맥주 캔을 덥석 집어 들었다.
'어?'
나는 찰나의 순간, 미칠 듯한 흥분과 자괴감에 휩싸였다. 단순히 목이 타는 것을 넘어, 내가 마시던 것에 입을 댐으로써 무의식적인 수용이나 간접적인 키스를 상징하는 것 같아, 내 안의 변태적이고 궁상맞은 갈증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병운은 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캔을 입에 가져다 대고 목이 타는 듯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까득, 까득.
소주 일곱 병을 감당하던 짐승 사이즈의 간을 가진 인간답게, 그는 맥주를 들이키는 모습조차 폭력적일 만큼 압도적이었다. 까만 반팔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 굵은 목젖이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 거품과 함께, 그 거친 수컷의 땀 냄새가 훅 끼쳐와 내 오감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그 묵직하고 원초적인 움직임에, 이미 이성은 회로가 타버린 지 오래였다.
벌컥벌컥.
캔을 단숨에 비워낸 병운이 "하아..." 하고 낮고 끈적한 숨을 토해냈다.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투박한 손등으로 훔쳐내는 꼴이, 내 가학심을 미친 듯이 자극했다.
"미치게 하는 구석이 있네..."
나는 그의 들이키는 모습을 짐승처럼 훑어 내리며, 끓어오르는 욕정을 겨우 억누르며 내뱉었던 지독한 혼잣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병운은 캔을 내려놓고는, 술기운에 젖어 나른해진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자세를 바꿨다. 양반다리를 풀고는 터질 듯한 회색 츄리닝 바지 아래로 뻗은 육중한 다리를 불편한 듯 폈다. 새하얀 양말을 신은 그의 큼지막한 발바닥이 내 집 거실 마루에 닿았다.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듯 몸을 살짝 기대 편하게 앉더니, 굵은 손가락으로 마른세수를 한 번 더 했다. 까만 티셔츠 위로 드러난 그의 산맥 같은 가슴팍과 널찍한 어깨는, 이제 술기운과 낯선 열기 때문에 힘없이 늘어져 있어서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면서도 섹시했다. 당장이라도 다가가 그 거칠고 뜨거운 가죽을 쓸어내리며, 짐승처럼 핥고 빨아주고 싶게 만드는 피지컬이었다.
"근데, 정 선생님은..."
병운이 나른하고 눅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술기운에 젖어 멍해진 두 눈이 나를 향했다.
"뭐 하는 사람입니까? 학원 강사라고 했나? 그 좋은 전셋집에 왜 혼자 살고..."
그는 자신의 거대한 두 손을 내려다보며, 자조적인 쓴웃음을 흘렸다.
"나 같은 궁상맞은 백수한테는, 왜 그리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는 겁니까. 정 선생님."
갑자기 병운이 내 쪽을 향해 상체를 홱 틀었다. 무방비하게 뻗어 있던 육중한 다리가 내 허벅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윽.
까득,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단단한 손아귀가, 내 들이키던 술잔을 향하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순간, 나는 공포에 가까운 전율에 휩싸여 하마터면 손을 뺄 뻔했다. 이건 단순히 술취한 인간의 수작이 아니었다. 유도 선수 출신 특유의 그 폭력적일 만큼 압도적인 힘, 박력이라 칭해도 될 그의 과감한 행동에, 내 연약한 손가락뼈가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형님."
그의 입에서는, 방금 전까지 나를 밀어내던 그 당황스러움 대신 미치도록 다정한 말투가 세어 나왔다. 그 극적인 온도차가 내 이성을 완전히 헝클어뜨리고,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되게 뭔가 어려운 분 대하는 것 같네. 그냥 형님이라 불러도 되겠수?"
"뭐... 그러던지."
나는 간신히 침을 꿀꺽 삼키며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손에 잡힌 내 손목은, 그 거대한 수컷의 페로몬에 짓눌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형님은 여태 어떻게 사셨수."
그의 나른하고 눅진한 목소리가 거실 바닥에 낮게 깔렸다. 술기운에 젖어 멍해진 두 눈이 나를 향했다. 그의 투박하고 커다란 두 손은, 이제 내 손을 움켜쥐고서, 내 안의 끓어오르는 욕정을 겨우 억누르며 내뱉던 지독한 혼잣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들었다.
